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기대보다 좋았던 이은조 소설집 수박
    flavor/Book 2020. 6. 6. 12:52
    반응형

     

    한동안 외국 소설만 읽다가 다시 오랜만에 한국 소설.

    어제 오늘 이틀간 읽어내린 이은조 소설집 '수박' 단편은 부담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어 좋다.

     

    읽고난 소감부터 얘기해보자면 김애란 '비행운'에는 못 미쳤지만 정이현 '상냥한 폭력의 시대' 보단 훨씬 재밌었다. (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일뿐입니다. )

     

    이야기는 총 8편으로 이루어져있고 전부다 좋았던 건 아니지만 대부분이 맘에 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한국 소설은 다른 외국작품들보다 좀 더 이야기에 몰입, 공감이 잘 된다고 해야하나.. 그래서 재미만큼이나 혈압도 두배 상승 ^^^^

     

    맨처음에 등장하는 단편작인 '전원주택'부터 이거 완전 저혈압 치료제 아니냐..

     

    시 외곽의 한적한 곳으로 이사한 어린 딸아이를 둔 부부가 그 곳에서 겪게되는 이야기. 그들이 이사를 한 후로 가족, 친척들은 물론 잘 알지도 못하는 지인들까지 그들의 집에 수시로 들이닥친다. 그 중에 가장 골치 아픈 불청객은 남편이 어릴 적 학업을 이어나가는데 큰 도움을 받았던 이사장의 아들네. 어릴 적 자신의 아버지가 도움을 줬다는 것을 빌미 삼아 수시로 제 집 드나들듯 하며 횡포를 부리는 강에게 남편은 더이상 참지 못하는 이야기.

     

    아, 이거 읽으면서 계속 혈압 상승할 때마다 '아, 이거 픽션이지.. 허구야.. 사실이 아니라고' 되뇌이며 읽었다.

     

    그 뒤로 이어지는 '바람은 알고 있지' 는 거의 공포급이었고 이 책의 제목이자 수록 되어있는 단편 중 하나인 '수박'은 나는 별다른 의미를 찾지 못했다. 이어 '우리들의 한글 나라'는 현재 타국에 나와있다보니 묘하게 이어지는 공감부분이 있어 인상적이었으며 '비자림' '가족사진' '흐르는 물에 꽃은 떨어지고' 이 세작품은 잘 읽혀지지 않아 빨리 읽고 끝내버렸다. 

     

    앞의 '전원주택'과 '바람은 알고 있지'오와 함께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소설은 ' 효녀홀릭'

    와.. 이것도 완전히 공포급 아니냐..

     

    사실 이은조 작가님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안면을 텄는데, 기대보다 더 좋았던 단편에 다른 작품들도 찾아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기억에 남는 책속의 문장들

     

    노부부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방문객들을 많이 받지 말라고 당부했다. 방문객들에게 당신들의 삶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노부부의 말은 빨간 소화기에 적혀 있는 주의 사항처럼 멀게 느껴졌다. 들쥐와 뱀이 나타나기도 하니 현관과 거실 방충망은 다시 공사하라고 했다. 노부부에게 어디로 이사하느냐고 물었다. 노부부는 아파트로 이사한다며 말을 아꼈다. 답답해도 할 수 없다는 체념 조의 말은 아내 쪽에서 새어 나왔다.

    이년 전 봄, 우리는 드디어 전원주택으로 이사했다.

    - 16페이지

     

    친정 식구들이 텃밭의 채소들을 한 보따리씩 들고 떠나자 시댁 식구들이 들이닥쳤다. 시부모의 형제들, 친정 부모의 형제들도 연달아 찾아왔다. 모두들 밭에서 저절로 나고 자란 공짜 식품으로 오해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남편의 회사 동료들과 내가 퇴직한 회사의 직원들도 왜 연락하지 않았느냐며 방문했다. 어차피 집들이는 치러야 할 것이었으므로 반갑게 손님을 맞았다. 오래전 친분이라 생각해썬 이들도 연락해왔다. 심지어는 친한 친구의 동생의 친구처럼 일면식도 없는 가족들까지 나타났다. 각박한 도시에서 살다 보니 전원이 그리웠다는 말은 짜고 온 것처럼 한결 같았다. 한번 초대했던 방문객들은 계절이 바뀌면 천연스럽게 날아와 휴일에 둥지를 틀었다. 가끔 도시의 아파트가 그리웠으나 아무도 우리 가족을 초대하겠다는 빈말을 흘리지 않았다. 그들은 기념일은 도시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챙기고 후일은 전원주택에서 만끼하고 싶어했다.

    -18페이지

     

     

    직업 때문에 잘 꾸미고 다녔던 혜리의 외양을 가족들도 곡해했다. 발품 팔아 장만한 값싼 소지품들이었다. 가족들은 다 알고 있었을 줄 알았다. 그것마저 다 포기해야 했을까. 모든 것을 걸고, 치부를 드러내야 마땅한 것일까. 도대체 얼마나 더더 자신을 버려야 하는 걸까...... 배려와 희ㅐㅇ은 반복의 습성만 있을 뿐 한계가 없다는 건 분명했다.

    -55페이지

     

     

    이따끔씩 혜리는 여기서 펑,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넌 때도, 마트에서 물건을 고를 때도, 집에서 문자가 올 때도 혜리는 여기서 펑, 을 외우곤 했다. 자신은 사라지고 세상은 남아있을 것이다. 그건 왠지 서글면서도 통쾌했다. 병에 걸렸다,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이사를 가야 한다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가족의 안부에 답하지 않아도, 궁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언니는 이기적이라는 동생들의 문자메시지가 떠오를 때마다 혜리는 최선을 다했다는 답장을 보내지 않은 걸 후회했다. 배려와 희생이 가족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둔갑하지 않았고, 단 한 번의 어쩔 수 없는 외면이 그동안의 배려와 희생을 덮어버린다는 걸 늦게 깨달았다. 서울을 떠날 때 혜리는 휴대전화를 해지했다. 섬에 도착하기 직전 비행기 화장실에 부러 휴대전화를 떨어뜨렸다. 

    -51페이지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